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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령이 이끄시는 평화와 생명의 길(3/3)

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문규현 신부

우리신학연구소 편집부(여름호에서 전체내용 가져옴)( yespeace21@hanmail.net) 2022.08.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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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KBS 수요기획 캡쳐. 문규현 신부(왼쪽)와 수경 스님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문규현 신부는 1990년 6월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1992년 12월 24일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기까지 3년 반가량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사건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한편 자신과 한국교회의 삶을 한국 역사와 민중의 삶에 반추해 더욱 깊이 있게 돌아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출소한 후 한국교회가 한국 역사와 민중에게 범한 죄를 고백하고 용서와 화해를 청하는 일을 구체화하고자 했다. 그 작업은 ‘민족과 함께 쓰는 한국천주교회사’라는 세 권의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조광 선생은 이 책을 두고 가톨릭교회사의 기본자료로서 가장 충실한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정리된 우리 교회사가 빈곤한 실정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잡지, 가톨릭신문, 가톨릭청년 등을 전부 복사하면서 자료를 모았는데, 이 책을 냈을 때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어요. 어떤 한국일보기자는 ‘누워서 침 뱉기다. 교회에 대해서 적나라한 고백’이라고 했지요. 역사적 사실인데, 자기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야 되겠어요. 민족사 안에서 교회를 봤을 때 어떻겠어요.”

 

통일의 장애물인 국가보안법

1990년대 사제단은 북한의 조선천주교인협의회와 교류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이어가려고 했다. 문규현은 1992년 12월 석방된 후 1993년부터 김제 요촌성당에 부임했다. 1994년 홍근수 목사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해, 평화구축과 통일운동을 이어갔다.

“1994년도에 평통사를 세웠어요. 홍근수 목사님은 반핵 책임자로, 나는 평화운동 단체로 연합했는데, 서로 목사면 뭐 어떻고 신부면 뭐 어떻냐 다 털어놓고 우리 평화로 가자고 했어요. 스파크SPARGK, Solidarity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Korea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좋잖아요. 우리 사제단도 그렇지만, 서로 담을 헐지 못합니다. 사실 사제도 평신도가 없으면 속수무책이잖아요. 평신도와 함께 해야 변화를 불러올 수 있죠. 지금까지 해 온 사제단의 활동이 사제단만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연대가 좀 아쉽잖아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공동 대표를 맡았던 문규현은 1998년 8월 사제단 대표단과 함께 다시 방북했는데, 평양 통일대축전에서 발표한 인사말 문제로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또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김대중 정권 시절이었는데, 그때 북한에서 홍수 피해가 매우 심했기 때문에 피해복구를 위한 교역을 제안했다. 한편 통일과 관련된 특별한 행사보다는 오늘의 사제단이 있게 한 사제들을 모시고 북한에 다녀오려고 했다. 그들은 김승훈, 리수현, 문정현, 함세웅, 한충석, 박승원, 박기호, 전종훈, 맹제영, 문규현 신부였다. 가톨릭의 여타 단체와 불교, 개신교 등은 북쪽에서 불허되었으나, 사제단은 피해를 입고 힘든 북한 사회를 돕겠다는 제안을 했더니 받아들였던 것이다. 갈 때만 해도 울진에 북한의 잠수함이 떠내려왔는데 잘 보내주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당국은 마음 놓고 좋은 일을 하고 오라 할 정도였다. 그 일을 지속하고 조율하기 위해서 실무자 두 사람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규현이 구속되는 바람에 그것이 아쉽게 무산되어 버렸다.

“그게 잘 됐으면 거기 강 피해도 복구했을 거에요. 여기에 소고기가 막 남아 돌아갈 때라 무상교역 물물교역으로 하기로 했죠. 그런데 정부나 교회는 지나치게 모든 권한을 자기가 지려고 해요. 당시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한참 김대중 정권을 용공정권이니 좌경정권 할 때라, 우리가 희생양이 된 것이죠.”

그는 재판과정에서 “나는 그리스도교 사제로서 나의 사명, 내가 실현해야 할 과제는 죽음을 다해서 하는 것이 내 본분이다. 바오로 사도의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공동번역 성서 로마 9, 3)라고 고백하고 실현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 부활이라는 새 세상이 온다. 과감히 남북이 이렇게 서로의 담을 헐어야 한다”고 했다. 사제단은 1980~190년대까지는 홍콩 카리타스를 통해 대북활동을 하다가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이어가다가 최근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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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열린 제1회 생명평화문화예술제에서 상임대표를 맡은 문규현 신부가 폐회선언을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하느님 자비의 손길이 되는 생명평화운동

문규현은 나중에 북한 쪽에서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을 하던 문 신부가 요즘엔 환경운동을 한다고 의아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규현은 2001년 5월 24일 명동성당에서 조계사까지 수경 스님과 함께 새만금 갯벌을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첫 삼보일배를 했고, 2003년 3월 28일에서 6월 5일 65일간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를 했으며, 2003년 7월부터는 부안 핵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2008년 봄에는, 지리산 하악단에서 계룡산 중악산, 휴전선 넘어 묘향산 상안단에 이르는 목표로 긴 오체투지 고생을 나서기도 했다. 마음 아프게도 분단은 그의 성찰과 수행을 가로막았지만, 그의 수행은 스스로의 성찰과 정치, 사회, 종교적 성찰을 위한 소통의 길이다.

그가 환경생태 운동에 동참한 것은 그간 이어왔던 평화운동의 연속이었다. 세상의 평화가 환경 보호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의 연대와 해방이 생명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절대 다른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끌어안고 연대하기 위해서 삼보일배를 했고 오체투지를 했다. 문규현은 탈핵정책이 후퇴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토로한다.

“우리나라처럼 핵발전소가 밀집된 곳이 없잖아요. 특히 경상도 쪽이 심각하죠. 계속해서 안전하다고 선전하지만 안전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탈핵을 통해서 생명을, 탈핵을 통해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전부 우리의 무관심과 무소신의 태도 때문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 종말을 바라봐야 한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문규현은 아직 늦지 않았고, 깨어나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석ㄹ한다.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미래는 오늘을 통해서 오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 자비의 손길이 되어야지 마냥 하느님 자비의 손길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생태운동과 평화운동은 결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문 신부는 강정기지는 물론 제주 제2공항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토로한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환경파괴는 더욱더 심각해진다. 지금의 제주의 환경은 급격하게 망가져 중산간 지역 개발로 더는 물도 예전처럼 맑지 않다. 동남아시아 정도까지 오가는 무늬만 국제공항을 만들려는 새만금 유역도 마찬가지다. 새만금 개발과 바다와 갯벌을 죽이고 환경은 더욱더 파괴된다. 게다가 미군 활주로까지 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수라갯벌에 신공항 건설계획은 환경파괴는 불 보듯 뻔하다. 더욱이 나중에 그것을 미군공항에 연결하게 되면 불평등한 SOFA(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에 관한 한·미 양국의 협정)에 따라 미군이 임의로 사용해 군사공항이 될 위태로운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문규현은 현재 평통사 명예 상임대표로 있으면서, 지역의 활동가와 교류를 하고 있다. 몇일 있으면 다가올 지방선거(지난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말함)와 교육감 선거에 대해 걱정스러운 점을 이야기한다. 물론 선거를 제대로 해 제대로 된 정부와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정치인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난 절대 운동하던 사람이 정치를 한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연대하면서 변해야죠. 제발 정치인은 무거운 십자가를 생각하며 소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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